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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發 중국이야기

차(茶)로 알아보는 역대 중국 황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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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중국 차의 역사는 유구하다. 중국 차는 중국 상고의 전설 황제인 신농씨(神农氏)가 병을 낫게 하는 찻잎을 발견한 이후로 남녀노소에게 사랑받으며, 중국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차는 찻잎의 산화(酸化)에 따라 녹차(绿茶), 황차(黄茶), 흑차(黑茶), 청차(青茶), 백차(白茶), 홍차(红茶)로 분류된다. 녹차는 중국 전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하고 홍차와 청차가 각각 10%를 차지한다. 시기에 따라 찻잎의 색, 모양이 다른 다양한 차들이 있었는데, 중국 고대 황제는 저마다 좋아하는 차 종류가 달랐다. 

◇ 백차(白茶), 송나라 휘종(徽宗)


▲ 푸딩바이차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백차는 일반적인 차나무와 달리, 솜털이 덮인 차의 어린싹을 그대로 건조해 만든 차다. 향기가 맑고 맛이 산뜻하며 여름철에 열을 내려줘 한약재료로 많이 사용된다. 백차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송나라 휘종이 생각난다.


▲ 송나라 휘종(徽宗)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송나라 휘종은 중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황제, 가장 향락을 사랑한 황제, 가장 윤락을 좋아하는 황제로 불렸다. 그는 다도(茶道)를 연구했는데, 그 유명한 '대관차론(大观茶论)'이 휘종이 쓴 것이다. '대관차론'에 따르면 백차는 다른 일반적인 차와 다르다. 벼랑과 숲 사이에 자생해 인공으로 키울 수 없다. 그래서 송나라 황가차원(皇家茶園)이 푸젠성젠안(建安,건안)의 북원(현 젠어우(建瓯)에 있었고 대관차론에서 말하는 백차는 북원에 있는 야생백차를 지칭하는 것이다.

최근 저장성의 한 차나무에서 딴 녹차를 백차 제조방식으로 만든 차도 '백차'라고 불린다고 말해 백차에 대한 논란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차 전문가들은 이전에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포용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6대 차로 분류했을 때 푸딩바이차(福鼎白茶)만이 백차로 구분된다.

◇ 황차(黄茶), 당나라 현종(玄宗)


▲ 황차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황차는 녹차와 흑차의 중간색으로, 찻잎을 솥에 볶아서 발효시켜 비벼서 저장했다. 향은 녹차와 비슷하지만 맛은 떫은맛이 없어 깨끗하고 순하다. 황차가 장강(长江) 중류에 있는 몽딩산(蒙顶山)에서 채취한 차라는 사실 외에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금다(琴茶)'에서 '마시는 차로는 예로부터 '멍딩차'가 친숙하다(茶中故旧是蒙山)'를 통해 황차가 당천보 원년(742년)에 중국 황실에 공물로 바쳐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때부터 멍딩차의 전성기가 시작됐고, 명성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채엽 시 잎의 여린 정도에 따라 황아(黄芽), 황소(黄小), 황대(黄大)차로 분류되는데, 멍딩차(蒙顶茶)는 멍딩황아(蒙顶黄芽)를 포함한 멍딩산에서 생산된 우수한 질의 찻잎의 통칭이다. 황차 가운데 가장 유명한 멍딩황아는 유구한 역사가 있다. 지금까지 명확한 고증(考證)은 없지만 민황(闷黄,찻잎에 열과 증기를 가해 엽록소를 파괴해 황차로 만드는 과정) 기술은 현대기술이 아니라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는 송나라 불교 '몽산시식의규(蒙山施食仪规)'의 보살에 공양할 때 바치는 멍산 작설차가 멍딩산의 멍딩황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 당나라 현종(玄宗)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황차를 언급하면 송나라 현종이 생각나는 이유는 바로 황차가 서기 742년부터 남녀노소 즐겨 마시던 차였으며, 현종이 총애하던 양귀비가 유명한 차산지멍산(蒙山)이 있는 쓰촨(四川)에서 태어났고 이 차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 녹차(绿茶),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 녹차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녹차는 발효시키지 않은 찻잎을 사용해서 만든 차로, 찻잎을 따서 바로 증기로 찌거나 솥에 덜어 발효되지 않도록 만든 차다.


▲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녹차를 언급하면 자연스레 청나라 강희제가 뇌리에 떠오른다. 청나라 강희시대에 장쑤둥팅후(洞庭湖)의 동쪽 산에 채엽시기에 올 때마다 찻잎이 무성하게 자라 바구니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양이 많아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찻잎을 안고 돌아왔는데, 자연스레 차에 화학변화가 일어나 강렬한 차향을 발산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차를 '혁살인향 (吓杀人香, 사람이 죽고 못 살 정도로 향기롭다)'이라고 부르고 바구니 대신에 품속에 넣고 돌아와 정제(精製)시켰다. 그 후 주위안정(朱元正)이라는 사람이 이 차를 정제해 팔았는데, 돈방석에 앉았다.

청나라 강희 38년(1699년), 강희제가 남방을 순행하다가 지방순무사인 쑹뤄(宋荦)가 받친 '혁살인향' 차를 마시게 됐다. 차 향기가 매혹적이어서 강희제는 차 이름을 물었고, 이 차 이름이 '혁살인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자 강희제는 이름이 속되다고 생각하여 이 차를 벽라산에서 생산되고 소라처럼 생겼다고 해서 '비뤄춘(碧螺春)'이라고 이름을 붙여줬다. 그래서 지금 중국의 명실상부한 10대 명차에 속하는 대표적인 녹차가 됐다. 

◇ 홍차(红茶), 명나라 융경제(隆庆帝)


▲ 명나라 융경제(隆庆帝)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홍차는 찻잎을 발효시켜서 만든 차로, 적색을 띠고 쓴맛이 적으며 순하다. 홍차를 언급하면 명나라 융경제가 떠오른다.


▲ 푸얼차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홍차의 원조'라고 불리는 '정산샤오중(正山小种)'는 솔잎을 그을려 향이 은은하게 배어나 19세기 초반까지 가장 환영받는 세계 최고의 홍차였다. 융경 2년, 푸젠성의 통무관(桐木关)은 푸젠성의 요로였기 때문에 침략이 잦았다. 한 군부대가 장시에서 통무관을 지나서 가는데 날이 늦어 차 공장에서 하루 지새웠다. 이튿날 전장에서 패해 차농가에서 차 공장으로 밤이슬을 피했다. 차 공장에서 군인들은 정제시키기 위해 모아놓은 찻잎을 이불로 삼아 덮고 잤고 체온 때문에 발효가 돼 붉게 변했다. 차농사를 하는 사람들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소나무로 훈연해 붉게 변한 찻잎을 끓였다. 그러자 차에서 독특한 소나무 향이 났고 은은하게 구이위안(桂圆, 중국 과일) 향도 났다. 이렇게 장산샤오중이 탄생한 것이다.

◇ 청차(青茶)와 흑차(黑茶), 청나라 옹정제(雍正帝)



▲ 우롱차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청차는 발효 정도가 가장 가벼운 백차와 강한 홍차의 중간인 반발효차로, 한국에서 흔히 알고 있는 우롱차가 청차에 포함된다. 청량감이 있는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 청나라 옹정제(雍正帝)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마지막으로 청차를 말하면 청나라 옹정제(雍正帝)를 빼놓을 수 없다. 청나라 옹정 시대, 푸젠성 안시(安溪)현에 은퇴한 장군이 있었는데, 이름이 '쑤롱(苏龙)'였다. 그는 까무잡잡해 사람들은 그를 '우롱(乌龙)'이라고 불렀다. 그가 피곤해 찻잎을 따서 방치해둔 채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 전날 따둔 찻잎이 변색돼 발효되고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차를 만들어 마셨는데, 그 맛과 향이 오히려 더 깊어 그 때부터 반발효차를 해서 마셨다.


▲ 비뤄춘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또한 흑차도 옹정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흑차란, 청차를 종이 등에 싸거나 매달아서 오래 보관해 효모균이 찻잎에 번식해 후발효가 일어난 차다. 그래서 검붉은 색을 띄고 숙성에 따라 맛이 다양하고 깊어진다.

흑차는 청나라 옹정제 때 황실 진상품인 공차(貢茶)로 선정되면서 황제가 마시는 차로 널리 알려졌다. 한국인이 흔히 아는 푸얼차(普洱茶)가 흑차에 속한다.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최예지 기자 rz@ife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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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봉황망코리아 ㅣ 차이나포커스 https://goo.gl/Bgba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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