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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發 중국이야기

당나라(唐)부터 청나라(清)까지…시대별 다양한 중국의 명절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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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원소절(元宵节, 정월 대보름), 춘절(春节, 설날), 중추절(中秋节, 추석) 등 중국에는 다양한 전통 명절이 있다. 사료(史料)를 보면 옛 중국인들은 당나라(唐朝) 시대부터 명절이라는 개념이 형성됐는데 그 전에는 미신적 요소 때문에 명절을 지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당나라부터 청나라(清)까지 시대별 중국의 명절 문화의 차이점과 특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 당나라 시대(唐朝)

당나라 시대는 중국이 자랑하는 최고 전성기 시대였다. 명절이 가장 많았고 그 중 음력 2월 1일의 '중화절(中和节)', 3월 3일 '상사절(上巳节)', 9월 9일 '중양절(重阳节)'을 합쳐서 '삼령절(三令节)'이라고 불렀다. 당대 덕종(德宗) 연간에 '삼령절'은 법정 휴일로 공식 지정됐다.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일반 백성들이 중양절을 지내는 방식은 주로 2가지였다. 지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야외활동을 선호했는데 주로 산책 또는 등산을 즐겼다.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산수유를 허리띠에 달고 등산하거나 집 마당에 모여 잔치를 열고 국화(菊花)를 관상했다. 황실에서는 대부분 신하들이 목욕을 즐겼고 황제는 곡강지(曲江池)에서 연회를 열었다. 당시 풍습이 지금까지 이어져 요즘 중국인도 중양절 때 등산을 하고 국화를 관상하는 것을 즐긴다.

당시 중양절은 큰 명절로 대부분 사람들이 의미있게 보냈다. 당나라 유명 의학자인 손사막(孙思邈)이 집필한 의학저서 '천금월령(千金月令)'에서도 중양절의 특별한 풍습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중양절에는 높은 산에 올라 신선한 바람으로 정신을 맑게 한다”는 내용이 꽤 흥미롭다. 과거 한나라(汉朝) 시대에도 중양절이라는 명절이 존재했지만 당대에 이르러서야 근본적으로 바뀌어 운동, 유람 등 오락 활동이 주가 되었고 본래 한나라 때는 악을 물리치고자 하는 종교 의식의 개념이었다.

◇송나라 시대(宋朝)

송나라는 시대마다 휴가를 보내는 방법이 달랐다. 연간 휴가 일수는 120여 일에 달했는데 이는 부강했던 당시의 시대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5대에 걸쳐 이어진 내란이 끝나고 난 뒤 중국인들의 휴가 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예를 들면 똑같은 중양절이라도 송나라 사람들은 국화를 감상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등산, 산책 등 야외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주류는 아니었다. 남송(南宋) 대표 문학가 오자목(吴自牧)의 '몽량록(梦粱录)'의 한 구절을 보면 "현재 사람들은 중양절(음력 9월9일)에 국화나 산수유를 술 위에 띄워 마시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대체로 산수유는 피사옹(避邪翁, 사악한 것을 피하게 해주는 노인)이라 불리고 국화는 연수객(延寿客,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손님)이라 불리기에 2가지를 먹으면 양구(陽九, 음양도에서 양의 오액(五厄)과 음의 사액(四厄)을 합친 재난)를 없앨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한편 송나라 사람은 당나라 사람보다 더욱 활동적이었다. 예를 들면 송나라 시절 중국 각지에는 장기, 마작 등이 유행했고 낚시, 귀뚜라미 싸움 등 기존의 민간 놀이 또한 귀족층 사이에서 널리 퍼져 대중화 됐다. 당나라 때 유행했던 축국(蹴鞠, 족구와 비슷한 공놀이)은 송나라 시대에도 큰 히트를 쳤다. 그래서 축국이 송나라의 '국민 스포츠'로 떠올랐다.

활동적인 송나라 사람의 다양한 취미 덕에 상업적 소비도 덩달아 늘어났다. 예로 새해를 보낼 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식을 즐겼다. 특별한 명절이 아니어도 여가시간에는 길거리 음식이나 간식 등 군것질을 즐겼다. 요즘 중국에서 자주 언급하는 '휴일 경제'(节假日经济)는 사실 북송 때 이미 형성됐던 것이다.

◇명나라·청나라 시대(明朝·清朝)

명·청나라 시대에는 휴일이 비교적 짧았다. 설날, 정월대보름, 동지 등 3대 법정 휴일을 제외하고 기존에 있던 청명절은 휴일로 인정받지 못했다. 지내지 않았다. 제한된 명절 휴일 때문인지 당·송나라 시대에 유행했던 등산, 유람 등의 여가를 즐기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명·청나라 시대 사람들은 주로 집에서 친구·가족을 만나는 것을 선호했다.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명·청나라 시대에는 중양절을 쉬지 않았지만 등산, 국화 감상 등의 취미 활동은 민간에서 여전히 존재했다. 명나라 유명 문학가인 유통(刘侗), 우혁정(于奕正)가 집필한 '재경경물략(帝京景物略)'의 내용을 살펴보면 "9월 9일 중양절에는 시집간 딸을 친정으로 불러 꽃 떡을 먹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질타를 받고 딸은 부모를 원망하며 여동생은 눈물을 지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송나라 때 중양절은 ‘국화를 관상하는 날’이었지만 명나라에 와서 '딸의 날'로 바뀌었다.

명·청나라 시대에는 명절에 같이 모여 음식을 먹는 것이 유행이었다. 예를 들면 가을 기간 명절에 연안 지역에서는 수확량이 많은 게를 주로 먹었는데 동네마다 크게 잔치를 벌여 게를 주재료로 한 ‘요리 대회’도 성행했다고 한다.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먹고 노는 것 외 사람들은 특별한 날 '목욕'을 즐겨했다. 당시 목욕은 휴가의 일종으로 이 때문인지 휴가를 '휴목(休沐)'이라고도 불리우기도 했다. 당나라·송나라 시대 사람들은 주로 집에서 목욕을 했다. 명나라·청나라 시대에 이르러 목욕 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공중 목욕탕이 우후죽순 생겨 당시 사람들이 목욕을 즐겨하게 된 계기가 됐다.


[봉황망 중한교류 채널] 윤이현 기자 yoon@ife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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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봉황망코리아 ㅣ 차이나포커스 https://goo.gl/UA3Rz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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