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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發 중국이야기

과거 수천년 전과 현재의 이름이 같은 中 도시 10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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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세계 4위의 국토 면적을 자랑하는 중국은 넓은 땅 만큼이나 도시들도 많다. 중국의 행정구역은 4개의 직할시(直辖市)와 23개 성(省), 5개 자치구(自治区), 2개 특별행정구역(特别行政区) 등 총 34개로 구분되며 그중 시(市)급 행정구역은 총 661개로 추산된다.

지난 5000년 동안 다양한 왕조를 거친 나라답게 중국 내 도시명의 변천사는 생각보다 훨씬 많다. 예를 들면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진나라-연국(燕国), 금나라-연경(燕京), 청나라-경사(京师)를 거쳐 지금의 이름을 얻었고 동북지역 교통요충지로 유명한 선양(沈阳)의 옛이름은 봉천(奉天)이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이름을 자주 변경하는 도시와 달리, 지난 수천년 동안 한개의 도시명을 꾸준히 유지하는 도시들도 있다. 차이나포커스에서는 지난 수천년 전과 현재의 이름이 같은 도시 10곳을 추려봤다.


◇ 한단(邯郸) – 약 3100년


▲ 한단(邯郸)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중국 허베이(河北)성 남서부에 있는 도시 한단(邯郸)은 31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중국 저명한 역사 실록인 '한서·지리지(汉书.地理志)'에 따르면 한단의 동성(东城) 아래에는 한산(邯山)이라는 산이 하나 있었는데 한단은 이 곳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끝난다(尽)'는 의미인 ‘단(单)’자와 고을 ‘읍(阝)’을 붙여 한단(邯郸)이 되었다.

한단은 '역사 백과사전'과 같은 도시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전역을 통일한 진시황제(秦始皇)가 한단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한단으로 정하고 세력을 넓혀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고 만세에 추앙 받는 천고일제(千古一帝)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청두(成都) - 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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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두(成都)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중국 쓰촨(四川)성의 성도(省都)인 청두는 과거 촉(蜀)나라의 수도였다. 옛날부터 농업과 방직업이 발달돼 기후가 온화하고 물산이 풍부해 '천부의 국가(天府之国)', '촉나라의 강남(蜀中江南)'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또한 과거 중국의 삼국시대와 수나라, 당나라 시대 때 세운 성터가 아직 남아 있는 명승지로도 유명하다. '태평배우기(太平环宇记)'에 따르면 전국(战国) 시대에 청두는 1년 만에 읍(邑)이 되었고 2년 만에 도(都)가 되었다.

한(汉)나라 때 청두는 칠기 공예의 중심지이자 중국 차(茶) 문화의 발원지이기도 했다.


◇ 셴양(咸阳) - 약 24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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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셴양(咸阳)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중국 산시(陕西)성 중부에 위치한 셴양은 남쪽으로는 웨이수이강(渭水)이 흐르고, 북쪽으로는 산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양지가 바른 도시다. 실크로드의 기점 도시이기도 한 셴양은 과거 진시황제가 6국을 멸망시키고 수도로 삼은 곳으로 유명해 '중국 제일 제도(帝都)'라 불렸다.

서한(西汉)의 수도인 창안(长安)과 셴양은 불과 4km밖에 떨어지지 않아 셴양의 베이위안(北原)은 서한 황실의 릉구(陵区)로 자리잡았다. 서한(西汉) 시대의 11명 황제 가운데 9명이 셴양 베이위안(北原)에 잠들어 있다.


◇ 창사(长沙) - 약 3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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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사(长沙) / 사진출처 = pixabay



초(楚)나라 문명과 상초(湘楚)문화의 발원지인 창사는 무려 30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다. 춘추전국(春秋战国)시대 당시 초(楚)나라의 중점 도시로 역사 실록에도 자주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의 곡창인 후난성의 상업 중심지로 ‘미시(米市)’라는 별칭이 있었다.

또한, 샹시우(湘绣·수공예품), 쭝볜(棕编·종려잎으로 짠 수공예품), 중국 적색 자기 등 전통적 인문학 색채가 그윽한 도시로 유명하다. 마오쩌둥의 고향으로 유명한 창사는 중국 근현대사에서 유명한 정치가, 군사가, 문학가를 많이 배출했다.


◇ 우시(无锡) - 약 35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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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시(无锡) / 사진출처 = wikipedia



장쑤(江苏)성 남부에 위치한 우시는 35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예로부터 농산물, 해산물이 풍부한 지역이며 중국 4대 명미(米)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석금현지(锡金县志)'에 따르면 주진(周秦· 주나라와 진나라) 시대에는 우시의 시산(锡山)에서 납과 *주석을 앞다퉈 채굴했다. 그래서 예로부터 '유시(有锡· 주석이 있다)'라고 불리었지만 서한(西汉) 초, 주석이 바닥이 나자, '우시(无锡· 주석이 없다)'라고 바꿔서 불렀다.
(*주석은 유리, 도자기, 합금 등 화합물 제조에 널리 쓰이는 금속이다. 고대부터 납과의 합금 형태로 땜납으로 사용되어 왔다.)


◇ 란저우(兰州) – 약 15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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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란저우(兰州) / 사진출처 = wikimedia



란저우는 중국 간쑤(甘肃)성 중부 위치한 황허(黄河)를 끼고 있는 대도시다. 란저우 일대는 '룽시(陇西)군'에 속했는데 수나라 개황(开皇) 3년에 '진청(金城)군'으로 개칭했다가 문제(文帝) 때 성 남쪽에 가오란산(皋兰山)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란저우'로 개칭했다.

란저우에는 민족 문화, 황허 문화, 실크로드 문화가 한데 모여있다. 가을여행이 가장 적합하고 '과일의 고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과일의 생산지다. 또한 최근에는 '란저우 중국 실크로드의 날'이라는 행사를 매년 개최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도 한다.


◇ 바오지(宝鸡) – 약 27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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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오지(宝鸡) / 사진출처 = wikimedia



산시(陕西)성 서남부에 위치한 바오지는 27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진한(秦汉)시대에는 '천창(陈仓)현'으로 불렀고 당나라 지덕 2년에 '바오지(宝鸡)현'이 되었다.

바오지라는 도시명의 유례는 조금 특이하다. 당시 황제였던 당숙종(肃宗)이 천창산에서 신비스러운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길조(吉兆)라고 생각해 닭을 국보(國寶)로 삼았고 그 이후 천창현은 바오지현으로 개칭됐다.

바오지에는 '청동기의 고향'이라고 불릴 정도로 청동기가 많이 생산된 지역이며 '명수잔도, 암도진창(明修栈道,暗度陈仓·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한다)'라는 속담이 생긴 발원지이기도 하다.


◇ 랴오양(辽阳) – 약 24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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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랴오양(辽阳)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중국 둥북(东北)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랴오양은 무려 24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과거엔 샹핑(襄平), 랴오둥청(辽东城)이라 불리웠는데 지리적으로 랴오닝(辽宁)성 중부에 위치한 타이쯔(太子)강 유역에 걸쳐있어 훗날 라오양으로 불렸다.

명(明)나라 때에는 이곳을 동북지역 경영의 기지로 삼았고, 청(淸) 태조 누르하치는 1621∼1625년에 이곳을 국도로 삼았다. 기원전 3세기부터 17세기 전까지 중국 동북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다.


◇ 광저우(广州) – 약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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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저우(广州) / 사진출처 = pixabay



광저우의 또다른 별칭은 '꽃의 성'이다. 과거에는 런아오청(任嚣城), 추팅(楚庭), 판위(番禺)으로 불렸다. 과거 진(秦)나라 시대부터 중국 광둥성의 행정·경제·문화 중심지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 3세기부터 해상(海上) 실크로드의 출발지였으며 당나라, 송나라에는 중국 첫 번째 대외무역항으로 '천년상도(千年商都)'로 불렸다. 1842년 아편전쟁(鸦片战争) 이후 잠시 경제적으로 쇠퇴했으나, 중국 근∙현대 시기 혁명 사건의 발상지로 자주 거론돼 혁명의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신해혁명(辛亥革命) 황화강사건(黄花岗事件)이 일어났고, 그 후 광둥정부(广东政府)가 광저우에 기점을 잡아 북벌의 거점으로 활용됐다.


◇ 포산(佛山) – 약 13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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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산(佛山) / 사진출처 = wikimedia



광둥성 광저우시 남서쪽에 위치한 포산은 예로부터 어미지향(鱼米之乡)으로 불리어 왔다. 당나라 정관 2년, 한 지역에서 동(銅)으로 만든 불교상 3점을 발견해 '포산'으로 불리었다.

전통적으로 상공업이 활발해 유명한 도자기를 비롯 견직물·제지·담배·도검 등의 제조 공업이 활성화 됐던 도시다. 당나라, 송나라 연간에는 수공업과 상업 및 문화가 발달했고 명나라, 청나라 연간에는 상인이 자주 방문해 무역업이 활발한 도시였다.

과거 송나라 시대부터 도자기의 산지로 유명했고 산수와 인물 등의 장식물들이 많이 생산돼 남국도도(南国陶都, 남쪽 지역의 도자기 중심지)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윤이현 기자 yoon@ife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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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차이나포커스 http://chinafocus.mk.co.kr/view.php?no=476&categorycode=3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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