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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發 중국이야기

[라이프 앤] 폐허로 전락한 랜드마크, 그곳에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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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봉황망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지난 1994년 중국 안후이(安徽)성 성도인 허페이(合肥) 기차역 맞은 편에는 둥근 기둥형 건물인 '신훙안(新鸿安)쇼핑센터'가 우뚝 서 있었다. 한 때 사람들은 이곳이 허페이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란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로 공사가 중지돼 2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점차 사라졌다. 다만 이 도시를 경유하는 사람들이 하룻밤 묵어가거나 갈 데 없는 이들이 모여 그들만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장소로 전락했다.

중국 봉황망에서는 오랜 세월을 거쳐 사람들의 관심에서 비껴나간 이들의 삶을 사진을 통해 재조명해 봤다.


▲ 사진출처 = 봉황망


지난 1996년 당시 이 건물은 평당 8000위안(약 133만3000원)에 달할 정도로 중국에서는 매우 비싼 곳이었지만 소방안전 미비, 재산권 갈등 등 악재가 겹치면서 공사가 중지됐다. 사진 속 깨진 유리창 사이로 허페이 기차역이 보인다. 기차역을 오가는 사람들은 이 건물을 흘끗 보고는 다시 바쁘게 발길을 옮긴다.


▲ 사진출처 = 봉황망


신훙안쇼핑센터의 로비에 서면 이 건물을 좀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지하층과 1층에는 저렴한 음식점과 여관이 즐비하고 2층엔 오랫동안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방을 임대해 살고 있다. 3층부터는 텅 비어있다. 간혹 주변 회사들이 일부 공간을 창고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 사진출처 = 봉황망


1층엔 아무도 치우지 않는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다.


▲ 사진출처 = 봉황망


판샤오쿤 일가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 머문 입주자들이다. 판 씨와 그의 아내는 1층 구석의 작은 방에서 10년 남짓 살았다. 이 부부의 쌍둥이 자녀들도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다. 



▲ 사진출처 = 봉황망


복도에서 판 씨 아들이 상자 속에 들어가서 놀고 있다. 장난끼가 많은 아들은 이들 부부에게 늘 행복을 가져다 준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장난감이나 간식을 사주진 못하지만 아들은 이 낡은 상자 하나만으로도 하루 종일 즐겁게 놀 수 있다.


▲ 사진출처 = 봉황망


땅거미가 내려 앉자 지하층에 위치한 여관에 비로소 활기가 넘친다. 이 건물이 기차역과 가깝고 가격도 주변 다른 여관에 비해 훨씬 저렴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하룻밤을 보내기 때문.


▲ 사진출처 = 봉황망


한 여관에는 21살 청년 저우톈톈 씨가 침대에 누워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광시(广西)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그는 가족들과 새해를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1일 숙박비는 30위안(약 5000원)이다. 



▲ 사진출처 = 봉황망


사진 속 도시락을 먹고 있는 세 사람은 안후이(安徽)성 딩위안(定远)현 출신으로, 저장(浙江)에 있는 한 패션공장에서 일하는 20대 초반의 청년들이다. 설 기간 이들이 고향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주일이 채 안 되기 때문에 허름하지만 이곳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서둘러 출발할 계획이다. 3인실은 하루에 50위안(약 8천원)이다.


▲ 사진출처 = 봉황망


여관을 운영 중인 판 씨는 고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곳에 허페이 기차남역이 신설된 뒤 허페이 기차역 승객들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최근 손님들이 부쩍 줄었다. 임대료를 내지 못하자 이곳에서도 곧 나가야 할 처지가 됐다. 


▲ 사진출처 = 봉황망


건물 2층엔 장기간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기본적인 인테리어는 물론, 화장실 설비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지만 임대료가 저렴해 많은 타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월세는 200위안(약 3만3000원) 정도다. 



▲ 사진출처 = 봉황망


이곳은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낙원과도 같다. 안후이 화이난(淮南)에 사는 판춘톈 씨는 한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덕분에 자신의 아버지가 여기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판 씨는 누나와 함께 아버지를 찾으러 이곳까지 왔다. 판 씨의 아버지는 자식들을 보고 놀라 "어떻게 왔니? 날 알아보겠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딸은 아버지를 부둥켜 안고 "왜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어요?"라고 되물었다. 딸의 목소리에는 원망과 그리움이 섞여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고 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 사진출처 = 봉황망


판 씨는 아버지를 모시고 이발소에 갔다. 길게 자란 머리를 잘라내고 수염을 깎자 예전의 말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판 씨의 아버지는 원래 버스운수회사를 운영했지만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서 회사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이후 판 씨 아버지는 충격을 받아 가족과의 연락을 끊은 채 수 년간 집 밖을 떠돌았다.



▲ 사진출처 = 봉황망


이날 저녁, 판 씨는 아버지를 모시고 이 건물에서 만난 아버지 친구와 함께 밥을 먹었다. 판 씨의 아버지는 "최근 몇 년 동안 허페이(合肥)에 머물렀는데 하오저우(豪州)에서 온 왕샹과 함께 떠돌이 생활을 했다”면서 “아이들이 나를 찾고 있는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봉황망 중한교류 채널] 권선아 기자 sun.k@ife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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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봉황망코리아 ㅣ 차이나포커스 https://goo.gl/GiZg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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