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은 전 세계적으로 기회와 희망이 가득한 해였다. 하지만 34세가 된 마윈(马云)에게는 고통과 어려움의 시기였다.
1998년 말, 호기 있게 시작한 마윈의 2번째 사업이 실패로 끝났다. 모든 것을 잃은 그는 베이징(北京, 북경)을 떠나 항저우(杭州, 항주)로 돌아왔다.
베이징을 떠나기 전 마윈은 경영진들과 함께 만리장성에 올랐다. 경영진 중 한 명이 만리장성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왜지! 도대체 왜인거지!” 울부짖는 그를 시작으로 마윈과 경영진들은 대성통곡 했다.
먼 훗날 마윈은 당시를 회고하며 "베이징을 떠나기 전날 밤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함께 작은 호텔방에서 술을 마시며 종일 울었다”고 밝혔다.
사업에 실패한 채 항저우로 돌아간 그는 1999년 알리바바를 창업한다. 그렇게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의 역사가 시작된다.
류창둥
중국 전자상거래 2위 기업 징둥의 회장 겸 CEO 혹은 국내에도 엄청난 관심을 끌었던 ‘밀크티녀’의 남편으로 알려져 있는 류창둥(刘强东) 역시 눈물의 34세를 보냈다.
전 세계가 금융 위기로 허덕인 지난 2008년 대출받은 융자금을 몽땅 써 버린 징둥그룹 역시 부도 위험에 처해 있었다. 투자자는 더 이상 류창둥의 말에 관심 가지지 않았고 징둥 그룹은 기약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자금 문제로 매일 밤낮으로 고민하던 류창둥은 34세의 나이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 다행히 그와 징둥은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겼고 지금의 영광을 누리게 됐다.
스위주
지난 1994년 스위주(史玉柱)의 건강식품 ‘뇌황금(脑黄金)’은 ‘꽃길’을 걷고 있었다.
1억2000만 위안(약 168억8933만원)을 투자한 그는 4개월 만에 대출 받은 1억8000만 위안(약 304억원)을 갚았다. 그리고 2년 만에 3억 위안(약 506억6700만원)의 수익을 냈다.
순탄대로를 걷는 듯 했던 그의 사업이 꼬이기 시작한 건 1996년부터다.
34세가 된 스위주는 본사인 ‘자이언트 빌딩’을 짓기로 한다. 이를 위해선 거액의 자금이 필요했지만 건강식품 판 자금으로는 부족했다. 설상가상 기업 내부에도 각종 문제가 발생했다. 쥐런그룹은 빠르게 주저 앉고 있었다.
이듬해 자이언트 빌딩은 공사를 중지했다. 건강식품 뇌황금 사업도 매출 하락을 면치 못했다. 업계 내 쥐런그룹의 지위는 유명무실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물론 스위주는 마의 34세를 버텨냈다. 그리고 ‘유명무실’한 것과 같던 쥐런그룹을 중국 대표 온라인 게임 및 금융 기업으로 성장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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