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發 중국이야기

숭정환(宋鄭還): 창의력에 힘입어 ‘유모차의 왕’ 등극

반응형

▲ 사진출처 = 금교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하오하이쯔는 올해로 창립 28주년을 맞이하는 회사로 중국 쿤산(昆山)에서 설립되었으며 이미 세계 최대의 아동용 내구제품 브랜드 업체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전세계에 총 4곳의 본사가 있고 8곳의 연구센터가 있으며 67개의 운영브랜드를 보유하고 있고 제품은 7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과거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오하이쯔는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혁신으로 경쟁업체들과의 거리를 나날이 벌려 나가고 있다.

독일 현지 시각으로 2016년 2월 26일 저녁 개최된 디자인 분야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중국의 하오하이쯔(好孩子) 포켓바이크(Pocket Bike)가 금상을 거머쥐었다. 이는 75개 부문 시상 분야에서 유일한 아동류 제품이었다. 

하오하이쯔는 올해로 창립 28주년을 맞이하는 회사로 중국 쿤산(昆山)에서 설립되었으며 이미 세계 최대의 아동용 내구제품 브랜드 업체로 성장했다. 하오하이쯔의 창업자인 숭정환은 이미 70세를 넘었다. 그는 일찍이 중국‘유모차의 왕’으로 추앙되기도 했다. 30년 전만 해도 그는 나중에 자신이‘유모차의 왕’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 곤경에 빠졌던 나날들 

1982년 숭정환은 쑤저우(蘇州)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쿤산 루쟈(陸家)진의 고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교감으로 승진했다. 

그가 근무했던 이 고등학교는 1970년대부터 교내 공장을 운영하여 전자레인지 등을 생산했다. 그러나 1988년에 이르러 공장의 부채가 무려 100만 위안을 넘어서면서 부도가 임박한 상황이었다. 현지 교육국 지도층은 그를 찾아와 사태를 수습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정말 저를 곤란한 입장에 빠뜨리는 요구였죠. 저는 수학만 가르쳐 왔을 뿐 경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거든요”라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이 교내 기업의 관리를 맡게 되었다. 그의 말대로 당시 그는 빚더미에서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빚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경영 초기부터 기업의 발전 방향을 설정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발명만을 의지해 창조해내고 브랜드를 만들고 사업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시장 연구를 통해 그는 거리에 돌아다니는 유모차들이 다른 제품을 모방한 것일 뿐 새로운 디자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저는 세계에 없는 자신만의 제품을 만들어내야만 이 업계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왕 이 업계에 뛰어들었으면 무조건 세계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는 결코 헛된 구호가 아니었다. 1989년 그는 혁신으로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는 한 장의 침대식 의자 사진에서 착상을 얻어 파이프로 4가지 기능을 갖춘 요람형 유모차 모형을 고안해내었다. 이것은 바퀴를 펼치면 유모차가 되고 접으면 요람이 되었으며 분해하면 침대식 의자가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착석 주머니가 부착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의자 안에서 걸음마를 배울 수 있었다. 그의 이런 발명은 전문가들로부터 “정말로 세상에 없었던 참신한 창의제품”이라는 큰 호평을 얻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오하이쯔 브랜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유모차는 하오하이쯔에게 커다란 시장의 문을 열어주었으며 하오하이쯔가 자주적 개발이라는 신념을 계속 견지하도록 이끌었다. 

◇ ‘히든 챔피언’에서 ‘실력파 챔피언’으로 부상

오늘날 북미 및 유럽 시장에서 유모차 2.9대당 1대가 바로 하오하이쯔 유모차라는 것은 조금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많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하오하이쯔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시기를 거쳤다.

1994년 하오하이쯔는 해외 진출을 시작하여 미국 뉴욕에 첫 해외지사를 설립했다. 미국의 소비자들은 브랜드 의식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생소한 상표의 제품을 결코 함부로 사지 않는다. 이로 인해 독자적인 브랜드 경영의 길은 장애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1996년 숭정환은 디테일한 일상생활 속에서 기발한 발상을 얻어 두 모델의 흔들이 유모차(포물선형, 직선형)를 고안해내었으며 모델 이름을 각각‘빠빠야오(爸爸摇)’,‘마마야오(妈妈摇)’로 지었다. 이어서 그는 신제품을 가지고 미국 제2의 유아용품 메이커인 COSCO를 찾아갔다.“그 당시 15분간의 협상 끝에 서로 협력하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같은 해 하오하이쯔와 COSCO는‘Cosco By Geoby’라는 연합브랜드로 미국 시장에 하오하이쯔 유모차를 판매했으며 빠르게 시장을 점령하며 거의 40﹪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2013년 말 하오하이쯔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이미 55﹪에 이르렀다. 




▲ 사진출처 = 금교


성공적으로 미국시장을 개척한 후에 하오하이쯔는 2002년부터 다시 유럽시장으로 진출하게 된다. 미국시장의 경험이 있었기에 그는 여전히 자신의 혁신력에 힘입어 유럽 현지의 선도적인 브랜드와의 협력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신제품을 연구개발하는 동시에 주문자생산방식을 채택했다. 4년 뒤에 하오하이쯔 제품은 또 다시 유럽시장에서 매출량 1위를 차지하게 된다. 

2014년 이전에 하오하이쯔가 각 분야에서 거둔 성공은 ‘히든 챔피언’이라는 말로 형언할 수 있다. 숭정환은 “히든 챔피언이라는 말은 간단히 말해서 매출량은 1위일지 모르지만 완전한 자신의 브랜드는 아니라는 뜻입니다”라고 토로했다.

2014년 하오하이쯔는 세계를 놀라게 한 두 건의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우선 유럽의 유명 고급아동용품 브랜드인 독일의 Cybex사를 완전 출자 인수했으며 이어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유명 유아용품 브랜드 Evenflo사를 완전 출자 인수했다. 이 두 건의 인수합병 성사로 하오하이쯔는 독자브랜드를 위주로 하고 연구, 생산, 판매를 수직 통합시키는 발전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 하오하이쯔의 생태시스템

숭정환은 지난 10년간 하오하이쯔의 주요 타깃은 해외시장이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전에 어린이 유모차나 어린이 안전의자 등은 중국 소비자들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 국내의 소비 마인드와 소비력에 큰 변화가 발생했으며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아동용품 소비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래서 하오하이쯔는 2010년부터 전략을 조정하여 국내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전환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중국시장의 변화에 보다 잘 적응하기 위하여 하오하이쯔는 ‘BOOM’경영모델을 제시했는데 ‘B’는 브랜드를 의미하고 ‘O’는 온•오프라인 판매경로를 뜻하며 ‘M’은 휴대폰 단말기, 즉 모바일 사용자를 의미한다.

현재 그는‘하오하이쯔 생태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의 주도 하에 2015년 하오하이쯔 산하 브랜드인‘하오마마(好妈妈)’앱이 출시되어 직접적으로 모바일 고객들에게 산하 브랜드 제품과 관련하여 제품, 주문, 결제, 배송, 서비스, 회원관리, 마케팅을 일원화한 관리를 제공하고 있다. 2016년 하오마마 앱의 온라인 판매는 이미 중국 주요 10대 도시에서 시작되었으며 2017년에는 전국 100개 도시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그는 하오하이쯔의 오프라인 경쟁력을 십분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쿤산의 전시장에 위치한 ‘하오하이쯔 스타 스테이션’이라는 콘셉트 매장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것은 그가 모색하는 새로운 경영모델로 그는 아디다스, 나이키, 스케쳐스 등 세계 12대 아동운동화 브랜드를 한군데로 집대성시켰다. 하오하이쯔는 이미 전국에 이것과 유사한 매장 200여 곳을 오픈했다. 오늘날 하오하이쯔 유모차는 중국시장에서 6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며 절대적인 강자로 자리잡았다.


<이 기사는 제휴매체 '금교'에서 발행한 기사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