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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發 중국이야기

청나라 마지막 일곱 공주들의 삶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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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이와 그의 형제자매 / 사진출처 = 봉황망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중국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푸이(溥仪)에게는 여동생 7명이 있었다. 공주들은 어렸을 때부터 온실 속 화초처럼 귀하게 자랐고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청나라가 멸망하고 황권을 잃어버린 푸이의 일곱 여동생들은 궁을 떠나 어떠한 인생을 살았을까? 봉황망에서 그녀들의 사진을 담았다.

첫째 공주, 윈잉(韫媖)

윈잉은 푸이의 첫째 여동생으로, 춘친왕(醇亲王) 아이신줴뤄•자이페이(爱新觉罗•载沣)의 장녀다. 그녀는 1908년생으로 이후 궈부뤄•룬량(郭布罗•润良)와 결혼했다. 신랑은 청나라 마지막 황후의 오빠였고 이들의 결혼은 황실 혈통에 따라 성사됐다.

이후 윈잉은 비참한 삶을 살았다. 17세가 되는 1925년, 그녀는 맹장염에 걸렸는데 당시 의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데다 윈잉의 가족은 서양 의술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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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셋째 공주 / 사진출처 = 봉황망



둘째 공주, 윈허(韫和)

윈허는 신해혁명이 발생해 청나라가 멸망한 1911년에 태어났다. 그는 푸이가 미리 점 찍어둔 정광위안과 결혼했다. 정광위안은 일본이 세운 만주국 총리 정샤오쉬의 손자로, 젊은 나이에 영국에서 유학한 엘리트였다. 이들 결혼의 이면에는 사랑이 아닌 정치적 거래가 있었다.

일본이 투항하고 나서 윈허 일가는 롤러코스터 같은 삶 보냈다. 신중국 건립 이후, 윈허는 어린이집 관리 일을 했고 정광위안은 베이징시 우편기초공사처(北京市邮局基建处)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2001년 윈허는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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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공주 / 사진출처 = 봉황망



셋째 공주, 윈잉(韫颖)

윈잉은 1913년 생으로, 푸이와 그의 어머니 과얼자유란(瓜尔佳氏幼兰)의 밑에서 함께 자랐기 때문에 푸이가 특히 예뻐하는 동생이었다. 1931년 윈잉과 푸이는 둥베이(东北)에 가서 황후의 남동생인 룬치와 만주국 신징(新京,만주국의 수도로 현재 중국의 지린성 창춘시)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푸이는 룬치를 일본으로 파견해 군사를 배우도록 했고 윈잉도 남편을 따라갔다. 1933년 둘은 신징으로 돌아왔고 룬치는 만주국 고등군사학교에서 중학교 교관을 맡았다.

1945년 일본이 투항하자 윈잉은 당시 꼭두각시였던 황실 사람들을 따라 다리쯔거우(大栗子沟, 현재 중국의 지린성 린장시)로 도망쳤다. 룬치는 도망가는 와중에 소련군에게 붙잡혀 전쟁포로가 됐고 소련에 강제로 끌려갔다.

신중국 창립 이후 윈잉과 3명의 아이들, 보모는 베이징에서 힘들게 살았다. 마오쩌둥(毛泽东), 저우언라이(周恩来)의 배려로 윈잉은 베이징시 둥청구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北京市东城区政协委员) 위원이 됐다. 1992년 윈잉은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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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왼쪽), 넷째(오른쪽) 공주 / 사진출처 = 봉황망



넷째 공주, 윈시엔(韫娴)

윈시엔은 1914년생으로 푸이 황제의 친구 자오치판과 결혼했다. 자오치판은 몽고 귀족으로 후에 일본에 가서 군사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푸이의 호위관이 됐다.

전쟁이 발발하자 둘은 오랜 기간 떨어져 있어야 했다. 신중국이 세워지고 사회가 안정을 되찾았지만 남편의 부재로 윈시엔의 인생은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후에 저우언라이(周恩来)의 도움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얻었고 1982년 남편이 타이완에서 돌아오면서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녀는 2003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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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이와 그의 형제자매 / 사진출처 = 봉황망



다섯째 공주, 윈신(韫馨)

윈신은 1917년에 태어났다. 그녀의 남편은 청나라 충신의 아들로, 일본에 건너가 군사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그는 1945년 이후 소련 적색군에게 잡혀 시베리아로 끌려가 노동개조를 겪었다.

윈신은 베이징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직원으로 일했고 1998년 8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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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째, 일곱째 공주 / 사진출처 = 봉황망



여섯째 공주, 윈위(韫娱)


윈위는 1919년 출생해 1943년 금나라 황족의 후예 왕아이란과 혼인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송, 원대 명화를 접했는데 특히 청대 윈난톈(恽南田, 명말청초 서예가 겸 화가)가 몰골(沒骨)법으로 그린 화초를 즐겨봤다. 그녀는 훗날 윈난톈 파의 전통 기법을 전문적으로 배워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화풍을 탄생시켰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모두 화가로, 1947년부터 베이징 베이하이(北海)공원, 중산(中山)공원 등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곤 했다.


일곱째 공주, 윈환(韫欢)

윈환은 1921년 출생한 청나라 마지막 황족이다. 1950년에 29세의 나이로 중학교 교사인 차오홍즈와 결혼했다. 여러 공주들 중 그녀는 유일하게 한족 평민과의 자유연애로 결실을 맺었다.

그녀는 고귀한 황족 혈통이었지만 평생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교육에 헌신했다. 베이징에 있는 여러 학교에 그녀의 업적이 남아 있다.


[봉황망 중한교류 채널] 권선아 기자 sun.k@ife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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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차이나포커스 http://chinafocus.mk.co.kr/view.php?no=267&categorycode=3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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