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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發 중국이야기

[중국 그때 그시절] 2000년 이전 중국 창업 메카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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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말 중관춘의 모습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중국에서 창업의 열기가 날로 고조되자 중관춘(中关村) 과학기술단지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졌다. 이에 중국 봉황망(凤凰网)은 23일 베이징(北京) 최대 창업 단지 중관춘 과학기술단지의 20세기 말 모습을 공개했다. 


▲ 20세기 말 중관춘의 모습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 20세기 말 중관춘의 모습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중국 중관춘 과학기술단지는 중국의 첫 국가급 최첨단 산업개발단지이자 첫 번째 국가 자주 혁신 시범지역이다. 또한 국가급 인재특구이며 베이징(北京)·톈진(天津)·스자좡(石家庄)지역의 첨단기술 산업 벨트 핵심 산업단지이기도 하다.



▲ 20세기 말 중관춘의 모습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 20세기 말 중관춘의 모습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2000년 이전의 중관춘 과학기술단지는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렸다. 레노버의 류촨즈(柳传志) 징둥(京东)의 류창둥(刘强东), 바이두百度의 리옌훙(李彦宏) 등 중국에서 내노라하는 IT계 유명 거물들은 중관춘에서 자신의 꿈을 키웠다. 1980년대 초부터 중관춘에서 전자제품을 되파는 투기꾼들이 많아졌다. 1990년대부터 중관춘 일대에 많은 상점이 입점하기 시작했다. 



▲ 20세기 말 중관춘의 모습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2000년부터 2006년은 중관춘 과학기술단지의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시기였지만 진정한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거듭나는 해는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전자상거래가 발전하면서 중관춘이 지금의 중관춘 명성을 얻게 됐다. 



▲ 20세기 말 중관춘의 모습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중관춘은 많은 사람의 꿈과 희망이 있던 곳이었다. 해외 유학파는 물론, 잃을 게 없던 졸업생까지 중관춘에서 자신의 꿈을 키웠다. 


▲ 20세기 말 중관춘의 모습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1998년 징둥의 류창둥이 1만2천위안(약 204만원)을 들고 중관춘에서 조그마한 상점을 차리고 시디 알더블유(CD-RW)와 시디(CD)를 팔았다. 그는 전자제품 대리상에서 시작해 상하이(上海), 광저우(广州)에 자회사를 설립하며 사업의 규모를 서서히 키워 지금의 징둥을 탄생시켰다. 


▲ 장차오양(张朝阳) 중국 포털 사이트 소후(搜狐) CEO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 장차오양(张朝阳) 중국 포털 사이트 소후(搜狐) CEO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장차오양(张朝阳) 중국 포털 사이트 소후(搜狐) CEO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으로 돌아와 1996년 8월 아이터신(爱特信)정보기술유한공사를 설립했다. 아이터신은 1998년 중국의 첫 카테고리별 검색엔진인 소후를 만들었다.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최예지 중국 전문 기자 rz@ife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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