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發 중국이야기

'개혁개방부터 신시대까지', 1978~2017년 중국의 변화 ②

반응형
1978년 12월 18일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11기3중전회)가 베이징(北京, 북경)에서 열리면서 개혁개방의 서막을 열었다. 이 회의는 1949년 신중국 성립 이후 중국 공산당 역사상 의미가 깊고 중요한 전환점이다. 2018년은 중국 개혁개방 40주년을 맞는 해다.

1978~2017년 기간 중 중요한 역사적 사건부터 의식주행의 사소한 변화 과정을 봉황망(凤凰网)이 공개했다.



▲ 사진 = 셰하이룽(解海龙), 1991년 안후이성 진자이현(金寨县, 금채현) 싼허향(三合乡, 삼합향) 장완(张湾, 장만) 초등학교에서 쑤밍쥐안(苏明娟)이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고 있다. 이 사진은 나중에 ‘희망사업(希望工程)’을 나타내는 공익 사진이 됐다. 올해 34세인 쑤밍쥐안은 공청단 안후이성 위원회 부서기에 당선됐다. ⓒ 봉황망(凤凰网)




▲ 사진 = 위원궈(于文国), 1992년 주식시장이 번창하면서 상하이 완궈증권(万国证券) 밖에 많은 개인 투자자가 모여들었다. 1992년 중국 자본시장이 이제 막 시작됐지만, 신주발행은 여전히 탐색 단계에 머물렀다. ⓒ 봉황망(凤凰网)




▲ 사진 = 위원궈(于文国), 1993년 홍콩 화장품 전문가 정밍밍(郑明明)이 상하이의 한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화장품을 소개하고 있다. 둘러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흥미롭다. ⓒ 봉황망(凤凰网)




▲ 사진 = 왕푸춘(王福春), 1994년 선양(沈阳, 심양)에서 다롄(大连, 대련)으로 가는 기차에서 한 여행객이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다. 당시 휴대폰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격과 사용료가 비쌌다. 때문에 휴대폰이 사회적 신분을 상징했다. ⓒ 봉황망(凤凰网)




▲ 사진 = 리장수(李江树), 1995년 여성 승객이 황면(黄面) 택시에서 내리는 모습. 1990년대 베이징의 거리에는 가격이 저렴한 황면 택시가 넘쳐났다. ⓒ 봉황망(凤凰网)



▲ 사진 = 후웨밍(胡伟鸣), 1996년 싼샤(三峡, 삼협) 이민이 가구를 배에 싣고 있다. 이들은 싼샤댐 건설로 고향을 떠나야 했다. ⓒ 봉황망(凤凰网)




▲ 사진 = 장신민(张新民), 1997년 광둥성(广东省, 광동성) 선전(深圳, 심천), 3평이 조금 넘는 공간에서 부부 다섯 쌍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침대 10개를 겹겹이 쌓아놓고 생활하고 있다. ⓒ 봉황망(凤凰网)




▲ 사진 = 리징(李靖), 1998년 8월 1일 밤 8시 20분 후베이성(湖北省, 호북성) 자위현(嘉鱼县, 가어현) 부근의 창장(长江, 양자강) 제방이 무너졌다. 중국 인민해방군 모 부대 19명 용사들이 주민 53000명을 대피시켰다. 이 사진은 용사들이 남긴 마지막 사진이다. ⓒ 봉황망(凤凰网)




▲ 1999년 마윈(马云)이 이끄는 18명이 항저우(杭州, 항주)의 한 아파트에 모여 알리바바를 세웠다. ⓒ 봉황망(凤凰网)




▲ 사진 = 우완성(吴万生), 2000년 광저우의 빈자리가 없는 PC방. ⓒ 봉황망(凤凰网)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조성영 중국 전문 기자 csyc1@ifeng.co.kr
[ⓒ 봉황망코리아미디어 & chinafocu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 소식 플랫폼 - 봉황망 중한교류 채널]

 출처: 봉황망코리아 ㅣ 차이나포커스 https://goo.gl/gGdpYV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