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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發 중국이야기

[한중수교 25년] 모스크바에서 마주친 두 사람의 대통령 특사…과잉 보안·경쟁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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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7월 7일 노태우 대통령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이른바 "7·7 선언"을 발표했다. / 사진출처=국가기록원


(한·소수교로 8부 능선 넘은 북방외교)
88서울올림픽을 70여일 앞둔 7월7일, 노태우 대통령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이른바 7·7선언이다. 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킬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북한이 미국·일본 등 우리 우방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다”면서 한국도 소련·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 관계개선을 추구하겠다고 천명했다. 

북방정책 신호탄은 올림픽 개최국이라는 강점을 업고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바로 이듬해 육사졸업식에서 민병돈 교장이 대통령을 곁에 앉힌 채 “우리 적이 누구인지조차 흐려지기도 하며…”라는 항명 연설을 할 만큼 국내 보수세력의 반발도 거셌지만 대(對)공산권 외교 강화는 시대적 흐름이었다. 



▲ 1989년 한국과 헝가리가 수교를 맺었다. / 사진출처=국가기록원


소련이 휘청거리면서 냉전체제 해체가 임박한데다 88올림픽을 준비하며 공산권 모든 국가와 소통하며 선린의 물꼬를 터놓은 한국의 북방외교는 올림픽이 끝나는 동시에 순탄하게 추진됐다. 올림픽 개막 1개월 전 이미 합의를 마쳤던 헝가리에는 곧바로 상주대표부가 개설되고 폴란드·유고슬라비아로 이어졌다. 헝가리와의 전격 국교정상화와 관련, 미국 정부에 사전 통보조차 않는 바람에 한-미 양국 간에 냉냉한 기류가 조성될 정도였다. 이듬해인 1989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를 필두로 불가리아·몽골·루마니아 등과의 수교가 마무리됐다. 


▲ 1991년 노태우 대통령 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서명하는 모습 / 사진출처=국가기록원


◇차관 30억 달러로 한소 수교 폄하는 몰상식 

한소 양국은 그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영사처 설치에 합의했고 다음해인 1990년 9월30일 대미를 장식했다. 30억 달러 차관 공여 등을 들어 ‘돈으로 흥정한 수교’ 운운하지만 한소 국교정상화를 이렇게 폄하하는 행태는 국가에 대한 기본 개념 자체가 없는 넌센스다. 굳이 돈으로 환산한다면 안보비용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점에서다. 한소 수교는 그 자체의 무게도 무게려니와 한중 수교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1991년 9월17일)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1년 12월31일), 한중 수교(1992년 8월24일) 등 막판 난제들을 돌파케 만든 디딤돌이다. 


▲ 한소 수교 조인식 참석자들 / 사진출처=국가기록원


한소 수교 과정에서 우리가 오늘 곱씹을 대목들은 과정의 막판 우여곡절들이다. ‘제발 소련과 중국만이라도 아니기를’을 바라던 북한 주변과, 수교 성사를 위한 한국정부 관계자들의 노력, 그리고 한국 내부의 갈등 등이 우선 대상이다. 

북방외교의 마지막 고비인 한소 수교가 진행될 즈음 이와 관련된 ‘국내 세력’은 여러 갈래였다. 6공 황태자 박철언 체육장관, 청와대 사령탑을 맡은 김종휘 외교안보수석과 이병기 의전·김종인 경제수석, 외무부(최호중·이상옥 장관) 그리고 3당 합당으로 여권에 합류한 김영삼(YS) 민자당 대표다.


▲ 1990년 노태우 대통령과 박철언 체육청소년부 장관 / 사진출처=국가기록원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아래 현장을 누빈 박철언은 일개 장관·국회의원이 아닌 6공 황태자였다. 그는 전국에 걸쳐 최대 사조직 월계수회의 주인인 실세이기도 했다. YS 민자당 대표의 정치력에 압도돼 결국은 쇠락의 길을 길었지만 한때는 YS에 필적할 대안으로 자임했다.

대통령과 5년 임기를 다한 역대 최초 참모인 김종휘 수석도 박 장관과 정면으로 부딪칠 때는 빛을 잃었다.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은 이병기 의전수석도 박 장관 대목에선 주저앉았다. 북방외교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박 장관 견제를 위해 소련 특사 교체를 건의했다가 대통령의 면박을 받은 일도 있다. 박 장관 뒤에는 또 다른 실력자 서동권 안기부장이 버티고 있었다.

[봉황망코리아차이나포커스] 특별취재팀 kovap2@ife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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