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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發 중국이야기

‘과거와 현재의 만남’ 중국 우한 장안(江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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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중국의 한 도시 사진이 공개됐다.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최근 중국 봉황망(凤凰网)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汉) 장안(江岸)구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많은 중국인들은 장안의 거리를 걷다 보면 세월의 흐름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짧디짧은 수십 년 사이에 중국의 큰 사건이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면서 장안은 '근대 중국의 축소판'이라고 불린다.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1903년에 세워진 장안구 징한(京汉)거리에 위치한 다즈먼(大智门) 기차역은 1991년 10월 이후 기차 운행이 중단됐다. 현재는 중국 철로 박물관이 설립돼 있다. 다즈먼 기차역은 화이허(淮河)강을 지나는 첫 기차역이었다.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과거 장안구 란링(兰陵)거리에는 러시아인이 많았다. 1727년 중국과 러시아가 캬흐타 조약을 체결해 많은 러시아 상인이 한커우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 ‘중러의 만리다도(万里茶道)’가 생길 정도로 양국은 활발하게 교류했다. 현재 장안구 란링거리를 돌아보면 당시 한커우의 차 시장이었던 신타이(新泰)건물을 볼 수 있다.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1907년 일본은 중국 연해 지역과 운하에서의 해운업을 견제하기 위해 장안구에 오사카 상선회사, 우편선주식회사 등을 설립했다. 당시 교통 요충지였던 이곳은 현재 예비부부가 즐겨 찾는 웨딩 촬영장소로 바뀌었다.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장안구에는 유럽식 건물들이 많았다. 사진 속 건물은 지어진 지 108년이 된 당시 미국 영사관이다. 유럽 중세기 궁전을 연상시킬 정도로 각 층의 높이가 다르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 영사관은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가 1945년 항전 승리 이후 다시 문을 열었다.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영국 홍콩상하이은행(HSBC은행)은 중국 내 외국계 은행 가운데 가장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당시 세력이 가장 강했던 홍콩상하이은행은 1866년에 세워져 한커우의 세관 업무를 담당했다.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프랑스 칼리온은행은 당시 대중차관을 관리하던 은행으로, 1902년 한커우에 설립됐다. 1949년 신중국 성립 후 영업을 중단했고 지금까지 굳게 문이 닫혀 있다.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1906년에 지어진 중산(中山)도로는 당시 교통의 요충지이자 번화가였다.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100여년 전의 중산도로는 수운 교통이 활발했다. 현재는 100년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1924년에 설립된 영문판 추바오신문사(英文楚报馆)는 로이터통신이 입주해 있던 건물이다. 당시 유일한 영자 신문이었다.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최예지 중국 전문 기자 rz@ife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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