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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發 중국이야기

'송죽' 그림을 통해 본 화가 정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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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나라 화가 정판교(鄭板橋)의 그림 ⓒ 봉황망(凤凰网)


청나라 유명 화가이자 서예가이며 양주팔괴(扬州八怪∙ 건륭제 때 양저우에서 활약한 여덞 명의 화가) 중 하나였던 정섭(鄭燮)은 장쑤(江苏)성 싱화(兴化) 사람으로 한대 경학 대가 정현(郑玄)의 후손이며 일찍이 산둥(山东)성 웨이(潍)현 현령을 지낸 바 있다. 그의 집이 위치한 둥먼(东门) 수이관(水关)시의 강 위에 ‘고판교(古板橋, 오래된 판교)’가 있어 그를 정판교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독보적인 경지에 도달한 그의 시, 서예 및 그림은 세간에서 ‘삼절(三絶)’이라 불렸다. 그는 난초, 소나무, 대나무, 바위 그림에도 능했고 특히 오죽(烏竹) 그림에 능했다. 청나라 사람들은 그림을 그릴 때 사실을 묘사했는데 정판교는 사의(寫意)를 적절히 사용해 허실을 결합하고 그림에 정을 담아 사의기법을 새로운 경지로 발전시켜 후대의 찬사를 받았다.



▲ 청나라 화가 정판교(鄭板橋)의 그림 ⓒ 봉황망(凤凰网)


정판교가 평생 그린 그림 중에는 대나무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난초와 바위였다. 정판교의 대나무 그림은 일반적인 방법을 타파한 매우 독창적인 풍격을 지녔다. 대나무는 정판교의 일생을 관통했다. 대나무를 사랑한 그는 어렸을 때 대나무 그림자 사이를 거닐며 대나무 뿌리 사이에서 노니는 물고기를 감상하곤 했다. 대나무 숲 속에 침대식 의자를 놓고서 거기 앉아 대나무의 ‘언어’를 조용히 듣곤 했다. 나이가 든 후 그는 늙은 대나무를 많이 그렸는데 대나무를 본보기로 삼아 굳센 의지를 다졌다. 그는 ‘나만 죽석(竹石)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죽석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정판교는 소나무의 강직함, 난초의 은은한 향기, 바위의 견고함, 대나무의 고결한 절개를 유독 사랑했다. 죽석의 기개는 정판교의 성정과 서로 부합한다. 관료로 지낸 몇 년 동안 그는 야박한 세태를 목격하고서 푸른 대나무처럼 강직하게 우뚝 서고 바위처럼 견고해져 세상에 여백을 남기리라 굳게 맹세했다. 



▲ 청나라 화가 정판교(鄭板橋)의 ‘쌍송도(雙松圖)" ⓒ 봉황망(凤凰网)


정판교가 소나무 그림을 그리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소나무, 대나무, 난처, 바위를 같이 그리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하지만 소나무로 벗의 고결함을 상징하기를 좋아했고 영원히 변치 않는 충정도 표현했다. 산둥박물관 ‘10대 보물’ 중 하나인 ‘쌍송도(雙松圖)’는 그의 전성기 대표작품 중 하나다. 세로 201cm, 가로 101cm의 ‘쌍송도’는 서예, 회화 방면에서 모두 뛰어나다. ‘쌍송도’는 청 건륭 23년(1758년)에 그려진 것으로 정판교가 벗 숙옹(肅翁)에게 보낸 이별작이다. 이 그림은 정판교가 이전에 그린 사교용 작품이나 한가할 때 벗에게 증정한 작품들과는 구별된다. 이 그림은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서 창작한 작품으로 정판교 내면에서 우러난 진정한 감정을 반영한 것이자 아름다운 우정의 상징이기도 하다.

쌍송도는 붓으로 농담(濃淡)을 구분했는데 앞은 진하게 뒤는 흐리게 해 소나무의 공간적 효과를 나타냈다. 소나무가 빽빽하지만 너무 꽉 차 있지 않아 그림 구조가 더욱 선명하다. 그림 전체에서 소나무, 대나무, 바위의 위치와 제사(題詞), 발문(跋文) 처리가 매우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대나무의 섬세하고 날씬함은 소나무의 다른 풍정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장죽, 괴석, 난초는 정판교가 잘 표현하는 소재들이다. ‘쌍송도’에는 두 소나무가 하늘을 우뚝 떠받치고 서 있고 옆에는 세죽(細竹) 세 그루가 있다. 먹색의 농담이 매우 정취 있으며 대나무의 질감을 진짜처럼 표현해냈다. 대나무 잎은 들쑥날쑥해서 더욱 운치 있으며 난초는 엇갈려 있지만 어지럽지 않고 성기긴 하지만 오히려 힘이 있다. 우뚝 솟아 있는 바위는 숙옹의 도도하고 구속받지 않는 성격을 상징한다. 푸른 소나무, 깎아지른 듯한 바위, 청죽, 한란(寒蘭)은 친구의 고결한 품격을 빗대었으며 푸른 소나무처럼 지조가 있고, 바위처럼 강건하며, 청죽처럼 꼿꼿하고, 난초처럼 고결한 감정을 나타낸다.

청 건륭 원년(1736년) 44세의 정판교는 베이징에서 열린 예부 회시(會試∙명청대의 베이징에서 3년마다 한 번 치르던 과거의 하나)에 참가해 공사(貢士)에 합격했다. 5월에는 전시(殿試)에 참가해 진사(進士)에 합격했다. 이후 그는 1년 넘게 베이징에 머물렀다. 정판교와 숙옹은 건륭 2년 정사(丁巳)년에 처음 알게 됐고 건륭 12년, 15년, 23년 여러 차례 만나며 오랜 친구처럼 우정을 나눴다.


▲ 청나라 화가 정판교(鄭板橋)의 ‘쌍송도(雙松圖)" 제발(題跋) ⓒ 봉황망(凤凰网)





제사와 발문에서 정판교는 자신을 아우라고 칭하고 숙옹에 대한 존경을 정을 ‘제지부재, 역절부송지열(弟至不材, 亦竊附之列∙아우는 재목이 못 되는데도 분수에 맞지 않게 소나무의 대열에 다가가게 되었다오)’이란 말로 표현했다. 그림 속 두 소나무 중 앞의 것은 숙옹을 상징하고 뒤의 것은 자신을 상징한다. 앞의 것은 크고 무성한 것이 숙옹을 본보기로 삼았음을 상징하고 있다. 어떤 이는 쌍송(雙松)이 숙옹 부부를 상징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쌍송도’가 정판교의 숙옹에 대한 존경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정판교 본인 성정의 본 모습이기도 하다. 송죽의 절개는 그의 강직함의 상징으로 곧고 도도하고 길들여지지 않는 강건함이 마치 그 인품을 묘사하는 것 같다. 판교의 대나무와 바위는 오랜 세월 전해져 오고 있으며 그 강직함이 내재돼 있다. 대나무 그림자와 한란은 기품이 있고 대범한 그의 일생과도 같다.

제휴매체 중국 ‘금교(金桥)’ 정리: 권선아 중국 전문 기자 sun.k@ifeng.co.kr 

 출처: 봉황망코리아 ㅣ 차이나포커스 https://goo.gl/NfP52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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