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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發 중국이야기

'슬로우 라이프'의 도시 중국 청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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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금교



미국 타임지가 청두(成都)를 ‘China’s China’라고 소개한 이후 중국에서도 ‘청두, 가장 중국스러운 도시’라는 슬로건이 널리 퍼졌다. 느린 속도와 편안함은 청두에 와본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인 느낌이다.

청두의 ‘슬로’적인 기질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청두 사람들은 차를 우리고 마작을 둔다. 천극(川劇∙쓰촨의 전통극)을 들으며 고풍스럽고 우아한 촉풍당운(蜀風唐韻∙촉나라 풍격과 당나라의 운치)을 음미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간다.

청두를 구경하려면 두보초당(杜甫草堂)에 꼭 가봐야 한다. 환화시(浣花溪) 부근에 위치한 두보초당은 당나라 시인 두보가 안사의 난을 피해 숨어 있던 곳으로 청두에 머물 때 살던 집이다. 이곳의 수목은 하늘을 찌를 듯 높고 향기로운 계화나무는 여행객의 발을 붙든다. 돌다리, 작은 시내, 비단 잉어, 초목 가옥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전원의 풍취를 자아낸다. 가을과 겨울에 찾아가도 이곳은 여전히 꽃과 나무가 푸르고 무성하며 문, 정자, 가옥, 다리 등은 제각기 정취를 담고 있다. 


▲ 두보초당(杜甫草堂) ⓒ 봉황망(凤凰网)


이곳에서 4년간 머무른 두보는 240여 편의 시를 남겼다. 두보는 자신의 생활을 이 땅 위에 완전히 융화시켰다.

두보가 청두를 떠난 후 초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오대전촉(五代前蜀)에 이르러 시인 위장(韋莊)이 초당 유적지를 찾아 초가집을 다시 짓고 보존시켰으며 후에 송, 원, 명, 청 시기를 거치며 여러 차례 복원됐다. 현재 두보초당은 오랜 문화의 성지가 됐다. 만약 역사의 발전과 변천을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초당 내 문병(門屛∙밖에서 대문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대문을 가린 벽), 관청, 시사당(詩史堂), 공부사(工部祠), 당나라 유적지, 만물루(萬佛樓) 등 많은 명소를 가볼 만하다.

두보초당이 시성(詩聖)문화의 양춘백설(陽春白雪∙고상하고 심오한 문학작품)을 잘 보여준다면 콴자이상즈(宽窄巷子)는 고풍스럽고 소박한 시정의 민심을 느끼게 해준다. 2016년 4월 밤에 리커창 총리가 콴자이상즈를 방문하면서 도시 속에 숨겨진 이 작은 골목이 주목을 받게 됐다.



▲ 콴자이상즈(宽窄巷子) ⓒ 봉황망(凤凰网)


청두시 칭양(青羊)구 창순제(长顺街) 부근에 위치한 콴자이상즈는 청두가 남긴 유일한 청나라 시기 옛 시가지로 콴상즈(宽巷子), 자이상즈(窄巷子), 징상즈(井巷子)가 평행하게 배열돼 있으며 이는 모두 청대 벽돌기와의 모조 사합원 정원이다. 강희(康熙) 57년(1718년) 준가르의 난을 평정한 강희 황제는 천여 명의 병정을 청두에 주둔시켰고 그 해 소성(小城)을 기반으로 해서 만성(滿城)을 건축했다. 현재의 콴자이상즈는 당시 소성의 남겨진 부분이다.

콴상즈는 청나라 선통(宣統) 연간에는 싱런후퉁(興仁胡同)이라고 불렸다. 이곳에는 청나라 말기 민국 초기의 건축물이 많이 있으며 일부 교회가 남긴 서양식 건축물도 있다. 콴상즈는 ‘레저 라이프’ 구역으로 옛 청두 생활을 재현한다. 자이상즈는 청나라 때 타이핑후퉁(太平胡同)이라고 불렸으며 슬로 라이프를 지향한다. 

옛 청두의 정원문화도 엿볼 수 있는데 대다수의 정원은 현재 분위기 있는 바, 레스토랑 등으로 탈바꿈했다. 관광객들과 문학 청년들은 이런 골목에서 오후 내내 한가로이 여유를 즐긴다. 

남쪽으로 자이상즈에 인접한 곳은 징상즈인데 청나라 때 루이후퉁(如意胡同), 밍더후퉁(明德胡同)으로 불렸다. 이곳은 시정 옛 청두의 정경을 재현하고 있다. 신해혁명 후 이곳을 징상즈로 개명했으며 개조 후 징상즈의 남겨진 한쪽 거리에는 500m 길이의 역대 벽돌문화벽과 500m 길이의 민속 기념촬영벽에 지어져 있다.

콴자이상즈와 양식이 비슷한 거리로 진리(錦裏)가 있다. 이곳은 ‘청두 버전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중국인들에게 진리는 정신적 쉼터이자 삼국시대 문화와 청두 민속의 매력을 체험할 수 있는 거리다.


▲ 진리(錦裏) ⓒ 봉황망(凤凰网)


전설에 의하면 진리는 서촉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상업적 숨결을 갖춘 거리다. 일찍이 진한, 삼국 시기에 중국 전역에서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의 진리는 청두 무후사(武候祠)를 바탕으로 진한, 삼국 정신을 영혼으로 하고, 명과 청대의 풍모를 외관으로 삼으며, 쓰촨성 서부지역의 민속을 콘텐츠로 삼고서 삼국문화의 외연을 확장했지만 고유한 본토성은 잃지 않았다. 

진리에서 맛볼 수 있는 장비(張飛) 소고기, 싼다파오(三大炮∙쓰촨의 전통 간식), 페이창펀(肥肠粉) 등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들은 화려하진 않아도 실속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흙인형을 빚고 탕화(糖畵∙설탕을 녹여 그리는 그림)을 돌리고 전지(剪紙∙종이공예)를 산다. 


▲ 페이창펀(肥肠粉) ⓒ 봉황망(凤凰网)




중국의 거대한 역사 소용돌이 속에서 유일하게 성터 및 명칭이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도시가 바로 청두다. 줄곧 휴머니즘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는 청두의 생활방식은 마치 폭신한 소파 같아 촉박하게 걷던 걸음이 이곳에 와서 자기도 모르게 늦춰지며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게 한다.

제휴매체 중국 ‘금교(金桥)’ 정리: 권선아 중국 전문 기자 sun.k@ifeng.co.kr 

 출처: 봉황망코리아 ㅣ 차이나포커스 https://goo.gl/aDy8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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