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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發 한국이야기

<어느날> 리뷰 | 어느 봄날처럼 따뜻한 생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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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어느 봄날 벌어진 인간과 영혼의 만남은 발랄하게 그리고 진하게 상처를 치유한다 / 사진출처 = 맥스무비




<멋진 하루>(2008) <남과 여>(2016)의 이윤기 감독이 따뜻한 힐링 드라마 <어느날>로 돌아왔다. ‘내 눈에만 보이는 영혼이라는 판타지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인간의 먹먹한 모습을 보여준다.



봄처럼 따뜻한 힐링 드라마

 

병을 앓던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죄책감과 상실감에 빠진 보험회사 직원 강수(김남길). 삶의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하는 그에게 어느 날 혼수상태에 빠진 시각장애인 미소(천우희)의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 육체를 벗어난 영혼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앞을 보게 된 미소는 햇볕과 노을,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시장 생선의 비린내와 구운 김의 고소함까지 두 눈에 가득 담는다.


강수는 즐거워하는 미소 덕분에 아내와 추억을 떠올리고, 미소는 어디든 갈 수 있는 강수 덕에 보고 싶었던 이들을 마주한다. 우연히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만나 서로의 온기가 되어주는 두 사람은 우리가 한 번쯤 경험하는,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생의 순간들을 상기시키며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순간들은 두 사람의 상처 때문에 더욱 빛이 나는지도 모른다. 홀로 남겨진 자의 죄책감, 버림받은 자의 비참함이 드러나기 시작하며 이 발랄한 만남은 뻔한 로맨스가 아닌, 상처의 치유를 향한다. 김남길과 천우희의 감정 연기가 돋보이는 가운데 특히 김남길은 남몰래 꾹꾹 담아둔 마음의 무게를 조금씩, 섬세하게 덜어낸다. 이야기의 결말이 다소 극단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감정의 긴 터널을 벗어날 수 있는 선물 같은 영화가 되길 바란다.



▲ 김남길과 천우희의 감성 연기가 로맨스를 벗어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윤기 감독의 시도에 힘을 보탰다 / 사진출처 = 맥스무비



설정은 판타지, 공감은 현실적

<어느날>은 영혼과 인간, 두 주인공의 공감에 충실하다.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미소(천우희)의 영혼과 보험회사 만년 과장 강수(김남길)는 서로의 과거를 통해 아픔을 치유한다. 병원이라는 배경, 이윤기 감독이 연출해내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둘의 감정을 고스란히 보는 이에게 전달한다. 강수 눈에만 보이는 영혼이란 설정은 비현실적이지만,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은 현실적이다.


김남길은 아내의 죽음을 뒤로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강수가 겪는 감정 변화를 세밀하게 보여주고, 1 2역으로 다양한 모습의 미소를 보여주는 천우희의 연기는 <어느날>의 감성에 힘을 보탠다. 남녀의 로맨스를 살짝 벗어난 이윤기 감독의 이번 시도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 ‘영혼과 인간의 소통’이라는 설정은 분명 판타지 적이다. 하지만 이윤기 감독은 이 설정을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강수와 미소를 위로하는 도구로 적극 활용하며, <어느날>을 현실감 있는 드라마로 끌고 간다 / 사진출처 = 맥스무비


익숙한 듯 낯선 이윤기 감독의 판타지

판타지도 이윤기 감독을 만나면 현실과 찰싹 맞붙는다. <어느날>은 아내를 잃은 강수에게만 혼수상태인 미소의 영혼이 보이는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로맨스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강수는 영혼 상태인 미소에게 사고를 당하게 된 사연과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면서 미소의 소원을 이뤄주는 조력자가 된다. 미소 또한 아내를 잃고 상실감에 젖은 강수와 대화를 나누며 치유자 역할을 해준다.


이윤기 감독은 데뷔작 <여자, 정혜>(2005) <멋진 하루> 등 일상의 풍경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작품을 만들어 왔다. 그가 이번 영화 <어느날>에선영혼과 인간의 소통이라는 판타지 설정을 차용했다는 점이 새롭다. 하지만 이윤기 감독은 이판타지를 강수와 미소를 위로하는 도구로 적극 활용하며, <어느날>을 현실감 있는 드라마로 끌고 간다.


전작에서 봐 왔던 이윤기 감독만의 익숙한 색깔을 찾는 재미도 있다. 가장 먼저 들리는 것은 음악. 강수와 미소가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에선 재즈풍의 <멋진 하루> OST 곡을 그대로 사용하며, 잠시 <멋진 하루> 속 로드무비를 떠올리게 한다. <러브토크>(2005)부터 <아주 특별한 손님>(2006) <멋진 하루>의 음악을 맡은 김정범 음악감독이 <어느날>에도 참여했다.


그 외에도 <여자, 정혜>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2011)에서 자주 등장했던 빈집 안의 공허함, 노을 지는 하늘 풍경에 담긴 이윤기 감독 특유의 쓸쓸한 매력이 묻어난다. 다만, 대사로 미소의 속내를 나열하거나 플래시백 장면을 통해 과거 사연을 풀어내는 상투적인 표현 방식이 아쉬움을 크게 남긴다. 여백의 미가 돋보였던 감독의 전작과 <어느날>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발행: 제휴매체 '맥스무비'
출처: 봉황망 중한교류 채널 http://kr.ifeng.com/a/20170405/5527675_0.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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